[낱말 속 사연]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순간적으로 놀랄 때 '간(肝) 떨어지다'고 표현한다. "어이쿠 깜짝야, 간 떨어지겠다" 지나치게 대담해 질 때도 간을 사용한다. '간이 붓다' ‘감히 겁 없이 대들다니, 저놈이 간이 퉁퉁 부은 모양이군’ 등등 간을 비유한 관용구들은 이 밖에도 참 많다. 인체 기관에는 오장(五臟)육부(六腑)가 있다. 왜 하필 유독 간이 놀람과 대담을 표현하는 관용구에 선택된 것일까? 간은 척추동물의 장기에서 가장 크고(무게 1.4kg 안팎) 여러 가지 대사와 분비기능을 하는 가장 복잡한 기관이어서 일까? 물론 일리는 있다.

신체 기능보다는 오히려 죽음과 관련이 있다. 인간이 태어날 때 혼백(魂魄)이 생성된다. 혼은 간에, 백은 폐(肺)에 머물러 있다. 사후 혼은 육체에서 곧 바로 이탈돼 하늘로 올라간다. 백은 폐에서 뼈로 옮겨가 100여년(4대) 머물러 있다 완전히 사라진다. 죽으면 간의 기능이 당연히 상실된다. 간 기능이 상실되면 혼도 함께 사라진다. 간 기능이 상실되는 것도, 혼이 이탈돼 사라지는 것도 모두 생명이 끊어졌다는 의미다. '간 떨어지다'는 저승으로 향하는 삼도천 뱃사공에게 배 삯을 주고 배를 탄 셈이다. '간 떨어지겠다, 떨어질 뻔했다'는 죽음의 문턱 삼도천 구경만 하고 돌아왔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간이 떨어졌으면 죽음이고 간이 떨어질 뻔 했으면 죽을 뻔 한 것으로 기적적인 소생이다.

간이 부으면 역시 혼이 온전할 리 없다. 간이 부으면 치명상을 입듯이 혼도 문제가 생긴다. 혼은 간에서 이탈하기 쉽다. '간이 붓다'는 표현은 다소 역설적이다. 죽음이 아닌 죽음에 맞서 죽음을 이겨내는 의지를 보여준다. 혼이 간에서 떠나가도 괜찮을 정도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겁 없이 마구 대드는 사람을 '간이 부은 놈'이라 일컫는다.

간과 혼이 함께 해 간혼(肝魂)이란 단어가 만들어졌다. 한자 문화권인 동양 삼국에서 간혼(肝魂)은 우리 밖에 없다. 담력과 비슷한 말로 겁이 없고 용감한 기운을 뜻한다. 혼은 간의 기능 활동을 기반으로 발현되는 정신의 발달은 물론 양적(陽的)인 정신활동과 외부로 출래(出來)되는 형태의 정신활동이다. 한의학 정의다.

요즘 간 떨어질 뻔 한 일들이 잦다. 툭하면 핵위협과 전면전 등으로 북한이 위협하고 있다. 토끼처럼 간을 떼 놓고 다니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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